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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피나무와 산초나무
초피나무 하면 먼저 추어탕이 떠오른다. 추어탕이나 민물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가 보면 상 위의 양념통 중에 초피가루 통이 메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피가루는 초피나무의 열매 껍질을 말려 분말로 간 것이다. 경상도, 전라도 지방엔 "방아"라고 부르는 배초향과 더불어 초피가 없어서는 안될 주요 향신료로 쓰이기 때문에, 집집마다 초피 열매를 소쿠리에 담아 가을볕에 말리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초피나무는 운향과(芸香科) 식물답게 강한 향기가 특징이다. 열매를 따서 살짝 씹어보면 향기가 강렬함을 넘어 입이 얼얼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따라서 호/불호가 분명한 향신료이기도 하다. 초피가루 없이는 매운탕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피가루를 넣은 음식에서 말표 빨래비누 냄새가 난다며 천리 밖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
봄에 나는 새순을 따서 장아찌를 담구어 입맛을 돋구는 별식으로 삼았고, 삼겹살 구이에 초피의 생잎을 한두개 넣어 먹으면 느끼한 잡내가 싹 가신다. 어쩌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초피가루를 살짝 넣은 겉절이를 만나면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초겨울 김장김치에 양념으로 넣기도 한다.
비슷한 식물엔 산초가 있다. 초피가 주로 향신료로 쓰이는 반면, 산초는 기름을 짜서 약용으로 쓴다. 과거 약이 귀하던 시절, 산초 기름은 가정 상비약으로 쓰였다. 주로 설사, 복통, 급체가 난 사람에게 한 두 숟갈 먹이면 바로 증상이 사라졌고, 멸균 작용이 있어 각종 종기나 베인 상처 등에 발라 요즈음의 "후시딘" 대용으로도 쓰였다. 근래엔 고지혈, 항암, 고혈압 등에도 좋다는 연구가 있어 만병통치성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몸값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소주병 한 병 분량의 산초 기름이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니 토종 참기름보다 5~6배는 비싼, 매우 귀하신 몸이다.
초피와 산초는 너무도 흡사하여 이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특성이 있다. 가장 손쉬운 동정 방법은 가지의 가시를 살펴보는 것이다. 초피는 가시가 한 쌍씩 정확히 마주나는데, 산초나무는 어긋나고 있다. 초피의 잎도 정확한 마주나기로 달리는 반면, 산초의 잎은 얼핏 마주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익은 초피의 열매가 붉은 빛을 띄는데 비해 산초는 녹색이 그대로 유지된다. 그 외, 초피의 잎은 오밀조밀한데 반하여 산초의 그것은 약간 크고 엉성한 느낌이 든다. 잎을 따서 비벼 보면 확연하게 다른 향기가 난다. 초피의 향이 툭 쏘는 느낌의 알싸하고 자극적인 것이라면, 산초는 자극이 거의 없고 약간 비린내에 가까운 역한 냄새가 난다.
초피를 산초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일본에서 초피를 산초로 부르던 것이 일제시대에 와서 굳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지역에 따라 초피를 재피, 제피, 조피, 젠피, 지피, 남초, 진추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산초는 분디, 분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구절초와 쑥부쟁이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가을을 대표하는 우리 들꽃을 들라 하면 주저없이 "들국화"가 떠오를것이다. 들국화는 그만큼 삼천리 방방곡곡 파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흔하고, 대부분 무리지어 피기 때문에 눈에 쉽게 띄어 누구나 어릴적부터 많이 접해 온 친근한 꽃이기 때문이다. 들국화가 피지 않았다면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것이고, 들국화가 지면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는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청순한 들국화가 산들바람에 짙은 국화 향기를 날리며 하늘거리는 모습은 우리 가을의 전형적인 전원 풍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것이다.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은 구절초와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등에 해당하는 국화과 야생화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친근한 "들국화"라는 꽃은 식물 도감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얼핏 보기엔 그놈이 그놈같지만, 엄연히 다른 꽃이고, 제각각 이름이 다 있기 때문이다. 위 안도현 시인의 독백처럼, 무식한 놈을 면하려면 최소한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이 국화과 들꽃을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알면 야생화 공부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구별이 그리 쉽지는 않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구분이 어렵지 않지만, 쑥부쟁이와 개미취, 산국과 감국은 구분이 제법 어렵다.
우선 구절초는 대체로 흰 색 혹은 연분홍 계통이고 높은 산에 주로 서식한다. 물론 서흥구절초 같이 분홍색이 짙은 녀석도 있다. 잎 또한 국화잎과 닮아 대체로 넓고 둥근편이며 크고 깊은 갈라짐(결각)이 있다. 꽃대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피고 꽃잎이 쑥부쟁이에 비해 넓다.
쑥부쟁이는 이에 비해 꽃이 연보라 혹은 짙은 보라색을 띄고 있고 잎은 길고 좁은 모양이며 갈라짐이 얕아 대체로 톱니 모양을 하고 있다. 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한 줄기에 많은 꽃이 달린다. 튼실해 보이는 구절초에 비해 전체적으로 가녀린 느낌이다.
구절초(九折草)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는 꽃"이란 이름에서 유래한다. 개화 기간이 길고, 꽃이 예뻐 꽃꽃이용으로, 또는 약효가 뛰어나 약용으로 아홉번씩이나 꺾이는 것이다. 혹은 음력 9월 9일경에 채취하는 구절초가 가장 약효가 왕성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며 그 외에도 몇 가지 설이 더있다. 가을에 구절초 풀 전체를 꽃이 달린채로 말린 후 달여 복용하면 부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불리어 졌다고 하며, 이 선모초(仙母草)라는 이름에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이 생겼으리라.
구절초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원종 구절초는 잎이 넓어 "넓은잎구절초"라고도 한다. 이와 더불어 잎이 좀 가늘게 갈라지는 산구절초, 더 가늘게 갈라지는 포천구절초, 강원 이북 고산에 자생하는 바위구절초, 제주도 한라산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한라구절초, 남쪽 섬과 해안에 자생하는 남구절초, 그리고 울릉도에 자생하며 한국특산인 울릉국화 등으로 나눈다. 물론 이들의 특징을 구분할려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현장에서 식물을 직접 보는 것이 최선이며,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쑥부쟁이도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울산 근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종으로는 어디에고 피어 있는 개쑥부쟁이를 비롯, 까실쑥부쟁이, 미국쑥뷰쟁이, 빗자루국화, 흰까실쑥부쟁이, 갯쑥부쟁이 등이 있다.
쑥부쟁이엔 아래와 같은 애잔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긁어 옴)
옛날 어느 산골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와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중 제일 큰 딸은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매일 산을 돌면서 쑥을 열심히 캐러 다녔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 이라는 뜻에서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마리를 구해주었더니 '언젠가는 은혜를 갚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멧돼지를 잡으려고 놓아둔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사냥꾼을 보게되어 이 역시 구해 주게되었다.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는데, '이 다음 가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떠나고 난 뒤 그 사냥꾼의 씩씩한 기상에 호감을 갖고 사랑을 느끼게 되어 매일 같이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그해 가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 와도 그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쑥부쟁이에게는 2명의 동생이 더 생겼고, 게다가 어머니마저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몇번이나 가을이 지나가도 그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아 이런 저런 걱정과 그리움은 쌓여만 간다.
그러던 어느날 몇년전에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서 쑥부쟁이에게 노란구슬 3개가 담긴 보라빛 주머니를 주고는,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노루는 곧 숲속으로 사라졌다. 쑥부쟁이는 곧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소원을 말했다.
"어머니를 병을 낫게 해 주세요" 그러자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완쾌되었다. 그해 가을에도 사냥꾼은 나타 나지 않아 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또 다른 구슬 한개를 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곧 사냥꾼이 나타났지만 이미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2명이나 있는 처지였다. 그 사냥꾼이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지만 '저이에게는 착한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있으니 돌려보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마지막 남은 구슬로 가슴이 쓰리고 아팠지만 그 소원을 말하였다고 한다.
그 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하였고, 결혼도 할 수 없었다. 동생들을 열심히 돌보던 어느날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이에는 아주 많은 나물들이 자라게 되었으며 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지닌 쑥부쟁이 꽃나물들이 아주 많이 자라게 되었다. 꽃대가 긴 것은 아직도 쑥부쟁이 처녀가 사냥꾼을 기다리는 표시라고 전해진다.
◎ 산국과 감국
오늘같이 가을비 내리는 궂은 날, 집에 앉아서 가을 향기에 취하는 좋은 방법이 뭘까?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국화향 그윽한 따끈한 국화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말린 국화차를 한 두 알 꺼내 투명한 유리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작은 덩어리가 서서히 풀리면서 찻잔 수면에 봉긋이 노란 국화로 다시 피어난다. 찻잔 속에서 작은 우주가 열리는 느낌이랄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국화차를 마시는 여러 기쁨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달고 향긋한 그 맛이나, 불면증을 없애고 피와 머리를 맑게한다는 효능 쯤은 그냥 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을 야산이나 해변의 오솔길을 걷다가 흐드러지게 핀 작고 샛노란 국화꽃 무리를 만난다면 십중팔구 산국이나 감국일 것이다. 그런데 야생에서 산국과 감국을 각각 따로 만나면 제대로 구분해 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꽃의 크기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산국은 감국에 비해 꽃의 크기가 작다. 산국의 지름은 1.5cm 정도인데 감국은 2.5cm 정도이니 엄지손톱을 대 보고 크기가 비슷하면 산국, 손톱을 완전히 가리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면(500원짜리 동전 크기) 감국으로 보면 될 것이다.
감국보다는 산국이 흔한 편이어서 동천강변 등에서 만나는 것은 대부분 산국이고, 감국은 해변 근처에 많이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정자에서 주전에 이르는 해변 밭두렁엔 감국이 서식하고 있다. 두 종류 모두 가을철의 주요 밀원이어서 각종 벌나비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화차를 만드는 것은 감국이다. 독성이 없고 향미가 좋을 뿐더러 여러 가지 약리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감국의 꽃을 따서 씹어보면 기분좋은 향과 더불어 단 맛이 난다. 이런 이유로 감국이란 이름을 얻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서 좀 보기 귀한 식물이 되어버렸고, 요샌 국화차를 만들기 위해 인공 재배를 많이 한다.
산국은 감국에 비해 맵고 쓴맛이 강하며 약간의 독성이 있어 국화차로 만들긴 적합하지 않다. 감국보다 향기가 강하여 군락 근처에 접근하면 그 향이 진동을 한다.
그 외 구별 포인트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꽃의 색상 : 감국은 다소 연한 느낌이있고 산국이 다소 짙은 느낌
꽃의 형태 : 감국은 흩어져서 피고, 산국은 모여서 핀다. 따라서 감국이 약간 엉성한 느낌.
잎의 모양 : 감국은 다소 매끈하고 산국은 좀 쭈굴쭈글하다
꽃자루 : 감국은 다소 길고(1.5cm 이상) 산국은 다소 짧다(1.0cm 정도)
꽃의 향기 : 감국이 다소 연하고 산국이 좀더 진하다
◎ 바디나물
미나리나 당귀, 참나물, 기름나물, 어수리, 사상자 등 우산대를 펼친 모양의 소복한 꽃이 피는 식물은 미나리과 혹은 산형과(傘形科)에 속하는데,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비슷한 것들이 많아 야생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0종 이상이 퍼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만도 67종이나 분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디나물도 산형과 문중의 일원이다. 우리나라 각지의 산이나 들의 습지 근처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인데 높이는 80~150cm 정도로 자란다. 짙은 자주색과 흰색의 꽃이 겹산형꽃차례(펼친 우산을 여러 개 겹쳐놓은 모양의 꽃무리)로 핀다. 잎은 두텁고 단단하며 3출엽(1회에 3개씩 나오는 모양)이고 주맥을 따라 날개가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줄기 윗부분의 잎은 퇴화하여 주머니 모양의 집이 되고 줄기와 함게 보라색을 띈다.
식물 이름에 "나물"이 붙은 것은 대개 나물로 먹을 수 있다. (피나물 등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는 나물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 바디나물도 어린 순과 잎, 줄기 등을 산나물로 먹는데 미나리과 식물 특유의 독특한 향미가 있어 산채 중 고급으로 친다. 줄기를 파 보면 굵은 뿌리가 나오는데, 산행 중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플 때 파서 흙을 털어내고 생으로 먹기도 하였다. 맛은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어 더덕과 비슷한 느낌이 나며 약간 달착지근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약초꾼들은 연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주로 뿌리를 채취하는데, 말린 뿌리를 한방에서 전호(前胡)라 하여 감기를 낫게하며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삭히는 약재로 쓴다.
◎ 청미래덩굴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겨울철, 찹쌀떡과 더불어 망개떡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설탕, 꿀, 계피, 팥소 등을 넣은 찹쌀 반죽을 만두처럼 빚어 망개잎으로 싸서 찐 것인데, 몇 개 사서 망개잎을 벗겨내고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쫄깃한 식감과 더불어 망개잎의 향까지 은은히 전해지던 그 맛... 치맥이란 것이 없던 시절, 찹쌀떡과 더불어 최고의 겨울 밤 군것질 거리 중의 하나였다. 망개잎은 떡끼리 들러 붙는것을 방지해 주고 특유의 향 뿐만 아니라 살균효과가 있어 떡이 오랫동안 쉬지않게 보존해 주는 자연 방부제 역할까지 해 준다고 한다. 요새도 이 떡이 의령 지방엔 "망개떡"이란 브랜드로 기업화되어 팔리고 있다. 망개란 청미래덩굴의 방언이며 지방에 따라 맹감 혹은 명감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청미래덩굴과는 전혀 무관한 망개나무라는 종이 별도로 있는데, 혼돈해서는 안된다.
덤불이 우거진 야산 묘소에 성묘를 갈 때, 가장 발길을 성가시게 하는 녀석도 청미래덩굴이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억척같이 번식하여 덩굴손으로 주위의 나무를 휘감고 쑥숙 자라는 억센 줄기는 날카로운 가시를 촘촘히 달고 있어 잘못 걸리면 옷이 찢어지고 몸에 상처를 입기 십상이라, 성묘객들의 공적 1호쯤으로 치부된다. 때문에 보이는대로 낫에 베여지는 수난을 당한다.
암수 딴 그루이며, 4~5월에 새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우산 모양 꽃대(산형꽃차례)에 황록색의 꽃이 10~25개씩 모여 달린다. 가시 투성이의 억센 가지에서 처음으로 돋아나는 반짝반짝 윤이나는 연두색 잎은 좋은 봄나물 거리가 된다. 10월경에 탐스럽게 빨간색으로 물든 열매는 꽃꽃이의 좋은 소재로 쓰인다. 빨갛게 익은 열매는 먹을 수는 있지만 과육의 질이 떫고 퍼석하여 그리 먹음직하진 않다.
청미래덩굴의 뿌리는 토복령이라 하여 한약재로 쓰인다. 통풍과 통풍성 관절염, 당뇨, 아토피, 뇌경색 등에 효과가 있으며, 뿌리에는 홍삼즙보다 많은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잎을 따서 말려 담배처럼 말아 피우면 니코틴을 해독시키고 금단 증상을 없앤다는 속설이 있으니 금연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분은 시도해 볼 일이다. 망개잎 외엔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청미래덩굴도 알고보면 귀한 자원인 셈이다.
◎ 청가시덩굴
청미래덩굴과 닮은듯 다른 식물에 청가시덩굴이 있다. 청가시덩굴도 청미래덩굴처럼 주변 산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식물이다. 같은 백합과(科)에 속한 활엽 덩굴성 관목이니 사촌지간쯤 된다고 볼 수 있다. 잎의 생김새도 흡사하고 덩굴손으로 다른 식물을 휘감고 덩굴을 뻗쳐 나가며 줄기는 가시로 무장하고 있는 점 등 여러모로 닮았지만, 뚜렷한 차이도 많아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청미래덩굴의 잎은 매끈한 반면 청가시덩굴의 잎은 얇고 쭈글쭈글한 느낌이고 잎맥의 주름골이 확실하다. 가시는 청미래덩굴보다 억세지 않고 가늘다. 열매가 청미래덩굴은 빨갛게 익는데 비해 청가시는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으로 익는다. 두 종 다 봄철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여름에 열매를 따 모아 껍질을 벗기면 속을 감싸는 하얀 막이 있는데, 그것을 긁어 모아 껌을 만들던 추억이 있다. 열매 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매우 적어 벗겨내는 족족 손등에 붙여 모았다. 송진과 섞어서 씹으면 짙은 솔향과 더불어 제법 쫄깃거리는 맛이 나는데, 물자가 귀한 시절 훌륭한 간식이 되어 주었다.
청가시나무, 청가시덤불, 종가시나무, 청경개까시나무, 청밀개덤불, 청열매덤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뿌리에 고지혈증을 치료하는 성분이 있어 신약 재료로 연구되고 있다. 가시가 없는 민청가시덩굴도 있다.
◎ 가새잎머루
가을철 산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자연산 야생 과일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머루와 다래는 가을 야생 열매의 대표격이다. 까맣게 잘 익은 머루는 당도가 높고 신 맛이 적어 꼭 포도를 압축시켜 놓은 듯하다. 열매는 그냥 먹어도 좋고, 따 모아서 머루주를 담가 마셔도 좋다. 우리 땅에 자생하는 머루에는 머루, 왕머루, 산머루, 가새잎머루, 까마귀머루, 개머루, 새머루, 섬머루 등 25여종이 있다고 한다.
까마귀머루도 울산 야산에서 흔히 자란다. 잎이 가위로 오려낸 듯 깊이 파여있어 가새(가위)잎머루란 이름을 얻었다. 가을에 짙은 보라색 보석같은 열매가 얼기설기 송이로 열리는데 맛이 몹시 역하여 먹을 수는 없다. 구분이 어려운 비슷한 종으로는 까마귀머루가 있는데 가새잎머루와의 차이는 열매가 보래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익는다는 점과, 잎의 끝부분이 뽀족한 가새잎머루와는 달리 뭉툭하다는 점이다. 봄에 피는 꽃을 보면 차이는 두드러진다. 까마귀머루의 꽃은 전체적으로 송이가 원뿔모양(원추화서)을 이루고 있는 반면, 가새잎머루는 원뿔모양의 꽃송이가 여러개 뭉쳐 달려(취산화서) 좀 산만한 느낌이 든다.
들길 산책하다가 까마귀머루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열매를 관찰해 보시기 바란다. 먹을 수는 없지만, 마치 칠보처럼 반작이는 아름다운 보석을 공짜로 감상할 수 있을테니까.
◎ 배풍등과 까마중
아파트 화단에 누가 심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는 식물 중에 까마중과 배풍등이 있다. 두 식물은 키도 작고 꽃이 자그만하여 시선을 그리 끌지 못하는데, 아마도 그 덕분에 관리인의 서슬퍼런 낫에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열매도 맺고 후손을 남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까마중과 배풍등은 둘 다 가지과(科) 까마중속(屬)에 속하여 잎과 꽃이 서로 많이 닮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까마중은 까맣고 반질반질한 열매가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는데서 유래한다. 배풍등보다는 꽃잎이 작고 꽃 수술의 색이 노란색이다. 열매는 검은색으로 익는데 약간 달착지근한 맛이 있어 어릴적 배고플 때 따 먹기도 했다. 먹고 나면 혓바닥이 까맣게 물들었다. 독성이 있어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고 한다.
배풍등은 한방에서 중풍을 예방하는 약재로 쓰인 탓에 "풍을 물리치는(排風) 덩굴(藤)"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꽃의 크기가 까마중보다 좀 더 크며 수술의 색깔이 검다. 가을부터 빨갛게 익는 열매는 그대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봄까지 유지한다. 눈이 내려도 빨간 열매가 남아 있어서 설하홍(雪下紅)이라고도 한다. 빨간 열매는 맛있어 보이지만 역시 독성이 있는데다가 맛이 대단히 쓰고 역하여 먹을 순 없다. 특히 선홍색 열매는 너무도 강렬해서 겨울철 사진가의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된다.
오늘도 귀갓길 아파트 화단에 배풍등이나 까마중이 있는지 찾아 보자. 지금쯤 까마중은 검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을것이며, 배풍등은 아직 덜 익은 초록색 열매와 익어가는 빨간색 열매를 함께 달고 있을 것이다.
◎ 선피막이
선피막이풀은 주변의 들에 흔히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상록성 여러해살이 풀이다. 도랑 근처를 걷다가 동전 크기에 손바닥 모양의 동글동글한 잎이 땅을 덮고 있다면 피막이풀일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출혈을 멈추는 지혈제로 쓰였다. 농부들이 논일을 하면서 거머리에 물려 피가 멈추지 않을 때, 이 피막이풀 잎사귀를 뜯어다가 비벼 피가 흐르는 곳에 바르면 바로 피가 멈추었다고 한다.
땅을 기듯이 자라고, 땅과 닿는 곳마다 뿌리를 내린다. 잎자루가 길고 잎의 뒷면에는 긴 털이 있다. 5~6월에 가지 끝에 우산모양의 흰 꽃(산형화서)이 피며 꽃대가 짧아 잎 아래부분에서 피우므로 잎을 들추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 잘 알 수 없다.
◎ 넉줄고사리
산행 중 바위나 나무껍질에 붙어 자라는 잎이 넓은 고사리를 만났다면 필경 넉줄고사리일 것이다. 활짝 펼친 잎이 매우 풍성하고 조형미가 뛰어나 거실의 화분에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한다. 꽃은 피지 않지만 잎의 번식이 빨라서 잘 관리해 주면 사철 내내 싱그러운 녹색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포름알데히드 제거 능력이 탁월하고 음이온을 방출하여 공기 정화능력이 있으므로 새집증후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아파트 거실의 에코힐링을 위한 최적의 식물인 것같다.
한방에선 골쇄보(骨碎補)라 하여 부러진 뼈를 이어준다는 뜻이니 골절환자들에게 다려 먹이거나 환부에 생약으로 찧어 바르기도 한다. (일설에는 넉줄고사리와 골쇄보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말도 있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넉줄고사리의 효능이다. 재미삼아 참고해 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고사리는 남성의 정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고사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발암물질까지 들어 있다는 임상보고도 있어 봄에 올라올 때 산나물로 조금씩 먹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계속 장복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동의보감에서도 고사리를 궐채(蕨菜)라하여 "성질이 냉해 열을 식히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오래 복 용하면 몸이 차가워져 양기가 줄어든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골쇄보" 즉 넉줄고사리는 그와는 정 반대이다.
남성에게 정력이 강해지게하는 천연 비아그라 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화가 있다. 60대 늙인이에게 시집간 첫째딸과 40대에게 시집간 둘째딸, 20대 청년에게 시집간 세째딸이 한 자리에 모여 성적인 이야기를 토로하는 과정에서 정력이 강한 젊은이에게 시집간 셋째딸의 만족감과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딸을 늙은 신랑에게 시집 보내서 성적 불만을 토로하는 두딸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몰래 엿듣고는 만족을 못느끼는 두 딸이 안스러워 "골쇄보"를 구해서 첫째, 둘째 딸의 신랑에게 주고 나서 금슬이 좋은 부부가 되어 백년해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넉줄고사리의 효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자양강장, 진통, 어혈, 지혈, 악창, 살충, 신허요통, 근육과 뼈의 마비, 치통, 이명증, 오랜 설사, 귀에 고름이 나오는데, 골절, 타박상, 시력감퇴, 정력증진, 각종 피부병을 치료한다.
◎ 부처손
부처손이라, 도대체 어떤 식물이기에 부처님의 신체 일부분을 이름으로 얻는 영광을 누리는 것일까? 부처손은 산지의 메마른 바위벽의 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양치식물이다. 날씨가 가물어 건조해지면 공처럼 둥글게 말라 오그라들어 죽은것 처럼 보이나, 오랜 기간을 죽은 듯이 있다가 비가 와서 촉촉히 젖으면 다시 잎이 활짝 펴지면서 파랗게 살아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예로부터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져 왔으며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많이 함유하여 특히 여성들에게 좋다고 한다. 강력한 항암 성분이 발견되어 약초 농가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는데, 약효는 자연산에 비해 좀 떨어진다고 한다. 잎, 줄기, 뿌리 등 전체가 약용으로 쓰이고 적절한 습도만 유지하면 사철 풍성하고 푸른 잎을 유지하므로 관상용으로도 쓰인다.
예로부터 여러 질병을 다스리는 영약으로 쓰였기에 병을 치유해 주는 자비로운 부처님의 손(약사여래)이라는 의미로 부처손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중국에서 "보처수"로 불리던 것이 변하여 부처손이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부처손의 효능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특히 부인병에 효능이 있어 임신이 힘든 사람에게 좋고 생리 기능을 정상화시켜 준다고 한다. 또한 부처손은 와송과 함께 대표적인 항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 전 TV에서 부처손의 항암 작용에 대한 내용이 전파를 타면서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고, 특히 자궁암, 위람, 간암, 폐암, 식도암, 뇌암 등에 좋다고 한다.
이 외에도 지혈작용, 천식, 기관지 질환, 신경성 질환, 신장 등에도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식물에는 위산 보다도 강력한 성분이 있어 약으로 만들어 복용할 경우 정상 세포까지 녹이고 심지어는 위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고 하니 전문가의 지도 없이 가정에서 임의로 조제해 먹는 것은 삼가야겠다. 우리 동네 근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므로, 산행이나 산책 중 메마른 바위에 붙어 어렵게 사는 이들을 보면 마구 뽑아갈 게 아니라 찬찬히 관찰해 보고 그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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